조선기독교연합회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재입국한 각국 선교부와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 청년회, 대한 여자 기독교 청년회를 포함한 당시 남한 기독교를 대표하던 거의 모든 단체들이 참여했다.
조선기독교 연합회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국기독교 연합회로 명칭을 바
한국 기독교 분열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고 개화기, 일제시대, 6.25, 군사독재와 경제성장, 민주화 등의 한국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의 교회는 경이로운 성장을 보여 왔다. 세계 선교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과 교회성장은 한국 기독교
가치뿐 아니라 근본주의적 교리 등도 포함된다”라고 강조했다.저자는 60∼73년까지를 다룬 ‘성육신 신앙은 역사의 소금과 누룩’편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과 유신에 반대해 반독재투쟁을 벌이며 정치 현실의 한복판에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했던 장공의 신앙을 설명한다.
사업은 칼빈(J. Calvin)이나 녹스(J. Knox)가 표현한 "교회 옆의 학교"라는 말이 조선에 있어서는 "학교 옆의 교회"라는 말로 대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에 한국은 고종이 공포한 「홍범14조」와 「교육입국조서」에 잘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근대교육을 추진함으로써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Ⅰ. 고신의 분열
1. 분열 배경
1946년 12월 3일 진주 봉래동교회에서 열린 경남노회 제48회 정기노회에서 일제 교단시대에 경남교구장이었던 김길창 목사가 노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노회에서는 지난 7월에 결정한 고려신학교 인가와 신학생 추천하는 일을 취소해버렸으며, 신사참배에 대해서